5월 3주차 주간보고 드립니다 (vol.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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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도 책을 읽다 새로운 단어를 건져 올렸습니다. 프릴루프츨리브friluftsliv.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야외생활'이라는 뜻의 노르웨이어입니다.
한국어로는 이렇게 긴 설명이 필요한데, 노르웨이에서는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좀 더 찾아보니 프릴루프츨리브(friluftsliv)는 자유(fri) + 공기(lufts) + 삶(liv)이라는 각각의 의미가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육체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철학이 담긴 단어*라고 합니다. 마음껏 애정할 단어를 또 하나 발견했다는 뿌듯함이 생깁니다.
*출처 : 책 '슬픔의 방문(장일호 저)'에서 책 '두 발의 고독(토르비에른 에켈룬 저)을 인용한 것을 재인용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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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만 있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표현이 있지요.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저는 발박수를 치며 공감했습니다. 아마 그 때도 해야할 일을 미룬 채 핸드폰으로 인스타짤이나 유튜브 숏츠 같은 걸 보며 누워 있었을 거예요. 저는 이 행위를 짤의 세계로 도피한다,고 표현합니다.
무언갈 시작하는 게 제게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매번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루지 못할 시점에 울면서 하곤 해요. 이렇게 미루기를 잘하는데, 하필이면 이름이 미리이고 별명이 미리미리인 사람이라니... 더욱 슬퍼집니다(스스로에게 김나중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두려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스스로가 안쓰러워졌어요. 단순히 게으른 게 아니라 너무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미루기로 발현된다는 것이죠.
일단 해 보자. 이 말이 저에게는 너무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저는 준비되지 않은 채 무언갈 시작하는 게 너무나 싫거든요. 며칠 전에도 해야할 일이 있는데 열심히 미루며, 웃기고 귀여운 짤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돌돌콩님의 인터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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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준비가 된 느낌이 안 찾아오는 거예요, 저한테. 내가 완벽하게 준비되는 때는 절대로 안 오겠구나.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던져보는 게, 나를 준비시켜주는 과정이겠구나."
- 유튜브 EO, 돌돌콩님 인터뷰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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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모든 말들이 저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처럼 주옥 같았는데요. '내가 완벽하게 준비되는 때는 절대로 안 오겠구나'를 깨달았다는 이야기에 머리가 딩, 했습니다. 바로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실패하면서 준비가 되고 방향성을 잡아가고 노력의 구체성이 생긴다는 것. 그러니 일단 나를 던지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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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모든 부분이 좋습니다. 10분이 조금 넘는 영상인데요, 구독자님들과 함께 보고 싶어 아래에 링크로 걸어둡니다. 저는 인터뷰를 다 본 후, 스스로를 위한 두 가지 액션 플랜을 도출했습니다.
첫째는, 정말로 하기 싫어도 딱 5분만 하기. 5분을 한 후에도 계속 하기 싫으면 미루기입니다. 해 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퇴사원 주간보고의 마감도 내내 미루고 있었는데요. 5분만 써 보고, 하기 싫으면 나중으로 미뤄야지 했는데, 엉덩일 붙이고 여기까지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둘째는, 해야하는 일을 더 쪼갤 수 없는 최소의 단위로 쪼개기입니다. 예를 들어 'OO 콘텐츠 마감하기'가 원래 해야할 일이라면, '촬영 이미지 정리하기' '보정하기' '스토리보드 짜기' '오탈자 검수하기' 등등으로 할 일을 조각내는 것이에요. 조각난 일은 실제의 일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이 조금 만만해지는 느낌이랄까요.
두 가지 액션 플랜을 수행하며 이번 주도 잘 보내 보겠습니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완료주의로 넘어갈 때 생각보다 많은 걸 해낼 수 있다는 돌돌콩님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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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담 : 꽃치자
사진첩과 일기장에 담아 두고픈 식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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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화원을 지나다 아름다운 하얀 꽃을 발견했어요. 흰 장미를 닮았는데, 장미보단 꽃잎이 도톰하고 윤기가 나더라고요.
"이 꽃은 향기를 맡아봐야 돼요."
인상 좋은 화원 사장님이 대번에 화분을 들고 나오십니다. 살 생각까지는 없었던지라 주춤거리고 있었는데요. 순간 사랑스러운 향기가 저를 훑고 지나가더라고요.
"어때요? 너무 좋죠? 으깬 복숭아 향기 같죠?"
사장님 표현이 너무 찰떡 같아서 놀랐습니다. 맞아요, 달큰하면서도 화사한 향기가 났어요. 이 식물의 이름은 '꽃치자'입니다. 보통 알고 있는 치자나무와 비슷하지만, 키가 작고 잎과 꽃도 작습니다. 겹꽃을 피우고요.
'초여름에 향기가 나는 곳을 돌아보면 언제나 치자꽃이 있다.' 라는 말이 있대요. 사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꽃치자나무의 향기를 맡고 보니 너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제 손에는 꽃치자 화분이 들려 있었습니다. 향기에 홀린 모양이예요. 아니면 사장님 입담에 홀린 것일 수도요.
치자의 꽃말은 여러 개가 있는데요. 보통 하얀 꽃들이 가지고 있는 꽃말인 '청결', '순결' 같은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없는 즐거움'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이 꽃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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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 정해진 회사로, 약속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루틴이 사라진지 한 달 반이 지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창 밖으로 해가 지곤 합니다. 조금 걷고 올까 하다가도, 집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게 귀찮아져 다시 컴퓨터 앞에 앉곤 합니다. 그렇게 새벽까지 일을 하거나 밤을 새는 일도 있고요.
오늘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퇴사원 주간보고를 쓰고 있습니다. 주간보고를 마무리하면, 오늘은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서보려 합니다. 신선한 공기와 자유로운 삶을 담은 단어, 프릴루프츨리브를 떠올리면서요.
그럼 저는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주간보고를 보낼게요. 평안한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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