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주차 주간보고 드립니다 (vol.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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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빌레라'를 봤습니다. 나빌레라는 일흔 살에 발레를 시작한 '덕출'과 덕출의 발레 스승 '채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평소 박인환 배우님과 나문희 배우님을 좋아해서, 뒤늦게 정주행 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 집배원으로 살아온 덕출의 마음속엔 오랫동안 발레가 있었어요. 어릴 땐 먹고살만한 직업을 가지라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가정을 이루고는 아내와 세 아이와 복닥이며 사느라 발레와 멀어졌던 덕출입니다. 그래도 종종 발레 공연을 찾아보고, 기사를 찾아 모으곤 했어요. 그는 그렇게 집배원으로 40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퇴직한 후, 이제는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가 너무 길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퇴직한 지 한 두 해가 지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래."
이 말이 심장이 쿵, 울렸습니다. 발레 연습, 아르바이트, 아들 노릇으로 하루가 벅찬 스물셋의 채록이나, 해내야 할 일로 하루가 가득찬 삼십대 후반의 저는 헤아릴 수 없는 느낌이겠지요. 하루가 너무 길고, 텅빈 노년의 느낌을 어찌 감히 안다고 하겠어요.
덕출의 곁에는 살던 대로 살자는 말,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말, 곱게 죽자는 말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런 하루를 보내는 기분은 어떨까요? 짐작하는 것만으로 속이 시리고 아픕니다.
이 드라마는 (이미 보신 구독자님도 계시겠지만) 아직 보지 않으신 구독자님들도 쉽게 예상할 만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어요. 덕출은 용기 내어 발레를 시작하고, 발레 스승이자 방황하는 청춘인 채록과 발레를 매개로 갈등하고, 위로하며, 함께 성장합니다. 복잡한 구조나 대반전의 서사가 없음에도 인상 깊습니다. 인생드라마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들의 연기, 일상을 소소하지만 아름답게 담아내는 연출, 참 어른인 덕출이 건네는 대사들이 무척 좋습니다. 덕분에 총 12화의 드라마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매 회 울고 웃으며 봤어요.
소개하고픈 주옥같은 대사들이 아주 많지만, 퇴사원 주간보고에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결정적 대사가 있습니다. 덕출이 슬럼프에 빠진 스물셋의 발레리노, 채록에게 하는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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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보니까 삶은 딱 한 번이더라.
두 번은 아니야.
내가 진짜 무서운 건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이 오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상황인거지.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
할 수 있을 때 망설이지 않으려고.
끝까지 한 번 해보려고."
하루가 너무 길다고 말했던 덕출은, 발레를 시작한 뒤엔 이렇게 말해요. 열심히 해서 더 많은 동작을 하고 싶다고. 내가 좋아하는 발레 정말 잘하고 싶다고.
드라마 '나빌레라'를 다 본 뒤, 저는 두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덕출처럼 멋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어른이 되자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은 해보자는 것입니다. 일흔이 덕출이 그랬듯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요.
"꼭 행복하게 살거라.
해보고 싶은 건 해 보고,
가보고 싶은 곳엔 꼭 가보거라.
망설이다 보면 작은 후회들이 모여
큰 미련으로 남게 되니까."
*마지막 대사의 출처는 원작 웹툰 '나빌레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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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퇴사원/전 퇴사원/언젠가의 퇴사원님들로부터 온
주간보고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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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님 지난 분기에는 계속 몸이 아팠어요. 몸의 일부가 고장 났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그전에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아요. 얼마 전 그런 편지를 보내셨죠? 어른이 되면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몸과 마음이 아픈 건 여태껏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탓이란 생각을 했어요. (...) 꼭 잘한 것만 회고할 필욘 없잖아요. 못한 것을 못한 그대로 돌아보려 합니다. 미리님 말씀처럼 돌아볼 때만 보이는 게 있으니까요. 대신 이번 분기는 잘해 보려고요.
수린님 2분기는 '새벽'을 주제로 흘러갔습니다. 문득 운동을 새벽에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기상시간은 갑작스레 4시 30분이 되었습니다. (...) 그 시간에 일어나 보니 처음 보는 컴컴한 풍경, 불이 모두 꺼진 아파트, 사람이 아무도 없고 신호도 안 들어오는 새벽녘의 동네, 런닝하며 해가 뜨는 풍경들이 너무나도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자는 시간에 이런 풍경들이 지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새벽기상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형규님 2분기에 저는 오랜 회사 생활을 마치고 퇴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쉬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려고요. 계획과 다르게 어떤 날은 자느라 하루를 날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게임을 하면서 하루를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해보고 싶었던 그림공부를 하다 새벽공기를 맡기도 해요. 새로운 스터디모임도 나가기 시작했구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점점 나아지는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3분기의 제가 기대된다는 점도 좋구요. 매주 월요일마다 도착하는 퇴사원 주간보고를 읽으며 힘내고 있어요,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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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부쩍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원래도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요사이 더욱 그렇습니다. 끙끙대며 몇 줄을 겨우 쓰고, 몽땅 지워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처럼 멋진 글을 쓰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아선지, 여러 개의 마감이 끊임없이 돌아가는 체제가 처음이라 그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해보려고요. 덕출의 말처럼 삶은 두 번이 아니라 딱 한 번이니까요. 쓸 수 있음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있다는 사실을 소중히 여기면서- 끝까지 써보려고요. 오늘 주간보고를 어렵지만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쓰고 보냅니다. 그럼 저는 또 다음 주에 편지를 보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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