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주차 주간보고 드립니다 (vol.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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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자기 자신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지요. 언젠가 퇴사원 주간보고 귀퉁이에 적어 보낸 기억이 납니다. 요즘 저는 스스로에게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걸까, 생각합니다.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 몸도 마음도 괜찮은지 자주 살피는 일. 그런 것이겠지요?
십몇 년 전, 그러니까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출근하고 나면 물을 잘 마시지 않았습니다. 물을 마시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니까요. 화장실을 오가는 그 짧은 시간이 아깝고 번거로웠습니다. 개인 컵을 닦아 보관하고, 물을 뜨러 가는데 드는 시간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이 흐르고, 물 섭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후로는 음수량에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습관이란 게 쉽게 고쳐지진 않더라고요. 마신 물의 양을 기록해주고, 물 마실 시간을 알려주는 앱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때는 생수를 박스째로 주문해 책상 아래 두고 마시기도 했고요. 지금도 충분히 물 마시기는 매일 해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과거의 저를 엄마의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물 마시기, 화장실 가기처럼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피해가며 일하는 제 아이가 안타까워요. 큰 컵에 물을 담아 쫓아다니며 마시게 하고 싶어요.
"한 입이라도 마시고 해. 화장실도 다녀오고. 5분 더 앉아 있는다고 지금 그 문제 해결되지 않아. 물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잠깐 스트레칭도 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다시 앉으면 해결할 방법이 떠오를거야." 하고 말해주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과거를 후회하지만, 요즘도 여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종 일정 내에 소화하기 어려운 일들을 부여해요. 퇴사원이 되고 스스로를 고용하는 사람이 된 후로 다시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 정도 밤 새거나, 야근하면 되지 뭐.'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바짝하는 게 낫지.' 하면서요.
그럴 때면 이제 제 안에 엄마를 깨웁니다. 엄마 말을 안 듣고 계속 달려나갈 때면, 제 안의 돌봄력을 극대화시키는 반려묘 소망이를 떠올리기도 해요. 소망이가 사람이라면, 만약 이렇게 잠도 안자고 무리해서 일한다면, 나는 소망이에게 뭐라고 할까. 아마 강제로라도 눕히겠지요. 잠깐이라도 자고 하라고, 그렇게 걱정되면 2시간 후에 깨워준다고 할 것 같아요. 너의 건강을 해칠 만큼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다고도 말해줄 것 같아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저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이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기도 하고,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지나친 모성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대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누구나 자기자신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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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거실에 큰 창이 있어서예요. 저는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낼 때 충만해지는 내향인인데요, 집 안에서도 시간과 계절의 흐름은 느끼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창문은 집에서만 사는 고양이에겐 TV와 같은 역할을 한다기에, 꽤 가산점을 주었지요.
그런데 계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집의 창 쪽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집 앞에 오래된 건물이 있는데, 그것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다는 거였어요. 새로 짓는 김에 기존의 층수보다 더 높게 지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왔어요. 그렇게 되면 저희 집 창으로는 볼 수 있는 것은 앞 건물의 벽면 뿐이겠지요. 소망이에게는 한 화면만 나오는 고장난 TV가 될 테고요.
'신이시여. 대체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전 재산을 쏟아부은 집, 이제는 무를 수도 없는 계약. 모든 걸 망친 기분이었어요.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사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생각날 때마다 앞 건물을 둘러보러 왔습니다. 몇 번을 들르는 동안 집 앞의 건물은 철거되었고 새 건물을 올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리에 건축허가 안내판이 세워졌어요. 공사하는 곳 앞에 공사면적과 기간, 목적을 안내하는 공사 안내판이요. 공사 규모 옆에 쓰여진 층수 정보를 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5층!!! 5층까지만 건물을 올린다는 거지?" 이 건물은 제가 살 집이 있는 건물의 허리 춤까지만 올라간다는 뜻이었습니다. 제 조망권이 보장되며, 소망이의 TV 또한 고장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어요. 아랫 층 주민분들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사람인지라 그 행운이 마냥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사 후엔 또 다른 문제에 당면했습니다. 공사 소음과 먼지가 엄청났거든요. 이사한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었는데, 창문을 열 수도 없었어요. 공사가 한창인 시간대에 저는 회사를 가니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청각이 예민한 고양이가 내내 그 소릴 들으며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안절부절한 마음이 되더라고요.
몇 달이 지나고 드디어 공사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후엔 새로운 건물에 드나드는 차량의 불법 주정차 문제가 생겼어요. 종종 골목이 막히거나, 차를 타고 골목에 진입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고요. 무언갈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그 대상보다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새 얼굴도 모르는 그 건물주를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어떻냐고요? 미워하기는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여전히 집 앞 건물주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요. 제게 매일 아름다운 초록과 사랑스러운 장면들을 보여주시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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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건물의 옥상 화단입니다. 저 보라고 가꾸시는 화단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색색의 꽃들이 피고지는 모습을 작은 노력도 없이 마음껏 보고 있으니- 무척 감사한 일이예요. 조금 있으면 수풀집에서나 보던 호박이 열리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걱정하고, 마냥 화내고, 애써 미워하는 일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며 살려고 해요. 조금 덜 걱정하고, 덜 화내고, 덜 미워하며 지내려고요.
때로는 삶이 이끄는대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종종 먼지와 소음, 주차난의 고통에 괴로워지겠지만 또 뜻밖에 초록이 찾아오는 행운도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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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보고 요약
퇴사원이라 회장님도 못말리는, 진짜 tmi 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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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일]
✔︎ 두번째 책의 첫 마감
계약한 새 책의 첫 마감. 첫 책의 첫 마감도 이렇게 힘들었던가. 그래도 쓸 용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이 마음으로.
✔︎ 세번째 출간 계약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은 차분히 계약하고 꾸준히 써서 소리소문 없이 책 내시던데 난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정말 쿨하지 못한 나. 어쩌면 스스로를 잘 아는지도.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내지 않으면 써 내지 못하니까. 미루고 미루다 계약금을 돌려 드리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할지도 모르니까.
✔︎ 강연 준비
DDP 디자인론칭페어에서 유통관련 강연을 하게 되었다. 강연은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라 매번 '이번까지만 하고 안해야지' 하는데- 또 하고 나면 훌쩍 성장하게 되는 이상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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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할 일]
✔︎ 강연 D-DAY
많은 사람들에게 앞에 서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준비한 만큼만 했으면.
✔︎ 세번째 책 첫 마감
글 쓰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다. 하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을까. 그렇지만 쓰면 쓸수록 나아진다는 것. 그게 응원이자 위로가 된다.
✔︎ 서울국제도서전
기대되는 책 쇼핑...! 트렁크를 끌고 가야하나.
✔︎ 여권 만들기
당분간 여행 갈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여권이 만료되서 못 가는 거랑 안 가는 거는 다르니까 일단 재발급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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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와 바람, 우박 소식이 있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실 월요일엔 곳곳에 소나기가 내린다고 하고요. 걸음걸음 안전하고 무탈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또 다음 주 월요일에 주간보고를 보내겠습니다. 평안한 한 주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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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은 김미리에게 있으며, 출처 표기 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errymiry)
- 매주 월요일 발행되며, 매주 화요일 브런치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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