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교 끝나면 해찰허지 말구 곧장 집으로 오니라!”
어릴 적 등교하는 제 등 뒤에 할머니가 외치시던 말입니다.
'해찰하다'는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한다는 뜻인데요. 어린 시절 저는 해찰왕이었거든요. 하교 길에 버섯을 캐러 간다며 사라져 해질 때까지 집에 오지 않거나, 모르는 개를 쫓아가다 개에게 물리고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일하는 곳까지 걸어서 몇 분 걸리는지 알아본다며, 반 친구들을 데리고 8km 거리의 시 외곽 길을 횡단하기도 했고요. 때문에 저는 아침마다 할머니의 경고(?)를 받았어요.
그런데도 학교가 끝나기만 하면, 할머니 당부는 까맣게 잊은 채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새로운 길로 걷고 싶고, 안 해본 일을 벌여보고 싶더라고요.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났고, 이제 저는 해찰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잊어버린 어른이 되었습니다. 대신 항상 '효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살고 있어요. 새로운 일, 안 해 본 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을 만나면- 머릿 속으로 확률이나 경우의 수를 따져 보고,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아 보인다면 빠르게 포기합니다.
그런데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모두 다 그 해찰 속에 있더라고요. 나무 그늘 아래 돋아난 버섯을 발견하고 소리쳤던 그 모험가적 순간. 개에게 물린 손을 치료한 뒤 할머니가 사 줬던 양과자집 사탕의 맛. 예상보다 먼 거리에 지쳐갈 때쯤 들른 휴게소에서 신나게 탔던 방방(트램펄린),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소리. 모두 해찰하며 쌓은 추억입니다. 샛길로 새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들이죠.
인생은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하는 경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종종 해찰하며 지내면 어떨까 해요. 이름 모를 꽃을 따라 걷다 멋진 풍경을 만나는 것처럼, 우연히 시작한 일에서 잊지 못할 일들이 시작될지도 모르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