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운동습관이 잘 잡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기초체력이 거의 없는(...) 편이잖아. 전날 한라산을 등반한 상태라 (다 채워져도 부족한) 본래 체력의 반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고. 게다가 일몰 전에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걸으면서도 마음도 볶았지. 그랬더니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나더라고.
숙소에 도착하니 몸상태가 말이 아니더라. 발톱 하나가 까맣게 멍들고, 종아리가 당겨서 더 걷지 못하겠더라고. 제대로 서지도 못하겠어서, (제주까지 왔는데)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침대에 쓰러져 누웠어. 그러고는 오늘 아침부터 또 걸었어. 다시 해가 질 때까지. 그리고 오늘은 새로운 물집 하나와 뒤꿈치, 무릎의 통증을 새롭게 얻었지.
왜 그렇게 미련하게 걷느냐고, 뭘 위해서 그러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매일 그렇게 바쁘다면서 일정을 엿새나 비우고, 제주까지 날아와서,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말야. 분명한 건, 땀에 절은 쉰내를 풍풍 풍기며 걸으면 걸을수록, 시큰거리는 다리를 견뎌내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나는 나를 세세히 알게 돼. 가끔 사랑하고 대체로 징그러워하는 나 자신을. 다른 설명이 없는 그냥 나를.
어제랑 오늘 걸으며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부칠게. 네가 잠시라도 제주의 가을을 느낄 수 있기를, 그 사이 잠시라도 쉬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