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주차 주간보고 드립니다 (vol.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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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구석구석 살고 싶어.
대충 살지 않고 창틀까지 닦듯이 살고 싶어.
- '아무튼, 노래' 중에서 -
이슬아 작가의 책 '아무튼,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작가의 친구가 화장터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후에 한 말인데요. 내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 또한 삶을 구석구석 살고 싶습니다. 대충 살지 않고 창틀까지 닦듯이요. 그러려면 일상을 자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퇴사원 주간보고는 제게 좋은 루틴입니다.
읽으시는 독자님들께 영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영감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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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크게 괘념치 않는다는 느낌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골 폐가를 산 사람이라서일까요. 도시의 힙한 곳들보다 시골 풍경을 좋아해서일까요.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해서일까요.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저 돈 좋아합니다. 많이 벌고 싶기도 하고요.
할 수 있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 위해서, 취향이나 선호보다 처지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애정하는 존재들이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참지만은 않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요.
그래도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는 동안 '순자산 N원, 연봉 N원'을 향해 달리지는 않을 거란 것입니다.
세상은 제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더 예쁘고 비싼 물건을, 더 멋진 차를, 더 넓고 좋은 집을 욕망하라고요. 하루에 몇 시간 투자해서 몇 억을 벌 수 있는데, 그런 걸 하지 않는 당신은 미래에 아주 불행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콘텐츠도 많지요. 그 이야기들을 가만 듣자면, 마치 돈 안에 행복이 꼭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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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 계절을 느끼며 익숙한 골목길을 걷는 일이 좋습니다. 허름하지만 정겨운 동네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 저녁도요. 좋아하는 사람들, 반려묘 소망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소중합니다. 수풀집 마당에서 뛰노는 마당냥이들을 바라보고, 지하철 역사의 드는 한 조각의 볕을 서두르지 않고 즐길 때- 행복합니다.
이 모든 일에 돈이 필요합니다. 국수 값, 소망이와 마당냥이들의 사료 값, 지하철비는 물론이고 공간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들이 들지요. 돈 안에 행복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 각자의 기준에 맞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좋아합니다.
필요한 것을 좋아하고 지향하는 게, 싫어하고 멀어지기 위해 애쓰는 일보다 좋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직 돈'만'을 위해 하루를 살아가는 일만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쓸 돈 보다 누군가에게 부칠 사랑이 더 많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앞으로의 일과 일터를 정하고 있습니다. 내내 이 마음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고유한 나로 일하며, 나와 내 반려동물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고, 밝고 맑게 돈을 좋아하는 마음을 지킬 수 있으며, 오늘 하루를 소중히 꾸릴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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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로 오랫동안, 높은 빈도로 저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편의점 4캔 만원 맥주입니다(이제는 1.1만 원).
독립을 하고, 취업을 하고, 10여 년이 넘는 회사생활을 하는, 그 오랜 세월 중 많은 날들을 함께했어요. 야근하는 날은 야근을 해서, 일찍 퇴근하는 날은 퇴근을 해서, 혼자인 날은 혼자라서, 누군가와 함께인 날은 함께라서- 편의점 맥주 냉장고 앞에 섰습니다.
세계 각 지역의, 여러 향과 맛을 지닌 맥주가 4캔에 만원이라니! 그것도 여러 종류를 교차해서 선택할 수도 있다니! 처음에는 4캔을 고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자동반사처럼 정해진 맥주를 집고는 계산대로 향하지만요.
퇴맥. 그러니까 퇴근맥주는 제게 보상이었어요.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시원한 한 잔. 거품 그득한 그 한 잔이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를 줬거든요. 좋아하는 음식이나 재밌는 책, 정주행 할 영상까지 함께라면 더 부러울 게 없죠.
퇴사 후 일상에서 퇴근이 사라진 지금도, 퇴맥은 여전합니다. 퇴근맥주에서 퇴근은 사라졌는데, 맥주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뽈록 나온 배와 둔둔한 허벅지, 유난히 느려진 몸도 남았지요. 높아진 염증 수치와 심해진 알러지 증상들도 제가 4캔 맥주와 오래도록 사랑한 흔적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버티고 견딘 나날이 많아 고마운 마음*이지만, 이제는 조금 거리를 두려고 해요.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은 퇴맥과 말이죠. 다음 주는 좀 더 가뿐한 몸으로 주간보고를 쓰고 싶습니다.
*구글링을 통해, 편의점 4캔 만원 맥주의 시작은 2015년이라는 정보를 찾았습니다(출처 : 경향신문). 제가 소셜커머스를 다니던 시절이군요. 새벽공기 마시며 출근하고, 새벽별 보며 퇴근했는데... 4캔 맥주를 마실 시간이 있었다니 젊음이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라떼족임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엣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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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보고 요약
퇴사원이라 회장님도 못말리는, 진짜 tmi 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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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일]
✔︎ 커머스 컨설팅 (프리랜서 MD로 일하기)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에디터, 마케터는 들어봤는데 프리랜서 MD는 들어보지 못했다. MD는 조직 밖에서, 개인으로 일할 수 없는 걸까? 고민하던 중 매거진 Achim에서 제안을 주셨다. 새롭게 오픈한 Achim Mart를 단단히 하는 커머스 컨설팅 건이다.
개인으로서 자유롭지만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 새로운 파트너들을 만나 짧은 시간 동안 임팩트 있게 일하는 것. 모두 귀한 경험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좋은 경험을 한 것에 만족하는게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 최상의 만족을 주는 것. 좋은 결과를 내는 것. 잘하자, 피고용인!
✔︎ 출판사 미팅 (feat. 다음 책 쓸 수 있을까요?)
쓰고 싶은 책과 잘 쓸 수 있는 책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쓰고 싶은 책보다 잘 쓸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내게는 작품이지만, 책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상품이니까. 책을 읽는 일은 독자가 돈과 시간, 마음을 모두 내는 일이니까.
✔︎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그냥 트렌드 서치하러 갔는데 아름다운 도자기 그릇들이 자꾸만 유혹을... 머릿속으로 집에 있는 그릇들을 꺼내 헤아려 보고 마음을 접었다. 적게 소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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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계획]
☐ 2월 회고 / 3월 계획 (feat. 불렛저널)
☐ 2월 마지막 산책과 3월의 첫 산책
☐ 치과 진료
☐ 인디자인 배우기 for 독립출판
☐ 소망이 목욕
☐ 수풀집 텃밭 퇴비 작업
☐ 지난 주에 못해서 미뤘는데 또 못한...
옷장 정리 / 메일함 / 핸드폰 연락처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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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퇴사원/전 퇴사원/언젠가의 퇴사원님들로부터 온
주간보고 피드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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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님 소망이한테 빙의해서 MBTI 하셨다는 대목에서 진짜 빵터졌네요.
Y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은 다이어리가 텅텅 비어 있어요. 지금 제 마음 속을 보는 것 같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퇴사원 주간보고를 읽고 위로가 되었어요. 우수 뒤에 얼음같이, 제 몸과 마음도 다 풀려서 온갖 얘기가 넘쳐나는 다이어리가 될 수 있도록 단단해지려고요.
K님 할일 목록에 커머스 컨설팅을 보자마자 오, 눈이 커졌어요. 해당 소식도 인스타나 주간보고로 알려주실꺼죠? 기대하겠습니다 :)
N님 저는 내일 인생 처음으로 취업을 위한 면접을 앞두고 있어요! 저도 언젠가는 퇴사원의 신분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그 땐 또 기분이 어떨지를 생각해보니까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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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문제로 모든 답장을 주간보고 피드백 코너에 담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보내주신 모든 답장은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읽고, 폴더를 만들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용기와 응원이 필요한 순간마다 거듭하여 읽겠습니다.
첫 면접 / 첫 출근 / 마지막 출근하셨다고 메일 주신 구독자님들께 마음 가득 응원을, 다른 분들께는 넘치는 감사를 보냅니다.
벌써 3주째 옷장 정리를 미루고 있는데요. 이번 주에는 정말 해낼 것인지, 저도 제가 궁금합니다. 삶을 구석구석, 대충 살지 않고 창틀까지 닦듯이 살고 싶다면- 엄청난 일이 아니라 이런 일부터 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옷장 정리를 마친 사람으로 당당히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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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끝자락에, 퇴사원 김미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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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은 김미리에게 있으며, 출처 표기 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errymiry)
- 매주 월요일 발행되며, 매주 화요일 브런치에도 게시됩니다.
- 읽으신 후 답장을 보내주신다면, 기쁘게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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