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구획이 명확하지 않으니 언제까지가 가을이고 언제부터가 겨울인지 구분하기 어렵죠. 저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잠시 기쁘다가 이내 슬퍼지면 그때부터가 겨울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을 떠서 등 뒤에 닿은 따끈한 전기 매트를 느낄 때... 잠시 기쁘고 곧 슬퍼지잖아요(저만 그런가요?). 아, 이 따수운 침대를 두고 일어나야 한다니! 씻어야 한다니! 아침의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 이제 전기히터를 가동을 시작해야겠습니다. 보온 물주머니도 꺼내고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저는 온열기구가 하나도 없었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방비를 신경 쓰며 사는 에너지 절약인이라) 난방을 충분히 하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집 안에서 싸늘함을 느낀 적은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 사는 집, 꼭대기집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난방에 불리한 복층인데 심지어 꼭대기 층집이라 겨울에 난방을 많이 하지 않으면 집에 싸늘해요.
아, 향(向)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집이 향하고 있는 방향 말이죠. 보통 향은 거실 창처럼 집에서 제일 큰 창문을 기준으로 판단한다지요? 꼭대기집은 정북향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향은 남향이고 다음이 동향, 서향, 북향 순이니- 저는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집에 살고 있네요. 이 순서가 일조 시간이 긴 순서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북향의 집은 해가 드는 시간이 가장 짧아서 낮에도 실내가 그리 밝지 않고 (저희 집처럼) 겨울철엔 난방 대비 기온이 낮죠.
그런데 이상하죠. 저는 이 집이 좋아요. 세 번째 겨울을 맞으면서 저는 북향 집과 제가 합이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북향 집은 온 집 안에 맑고 밝은 빛이 비추는 집은 아니에요. 하지만 해가 있는 내내 일정한 조도를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말수는 적지만 성실한 타입이지요. 친해지기 어렵지만 알고 보면 진국인 사람 같기도 하고요.
북향 집에는 햇빛이 집 안 깊숙이 들어왔다 물러나는 시간, 빛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다 마침내 어둑해지는 때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한낮에 창으로 들이치는 무자비한 직사광선, 해질녘의 짙은 그림자 같은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일부 외국에서는 중층 이상의 북향 집을 더 선호하기도 한대요.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으니 가구나 그림이 상하지 않고, 온종일 균일한 조도가 유지돼서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해야 하는 작업을 하기에 좋으니까요.
오늘같이 추운 날이면 저는 보일러 온도를 1도 더 올릴까 말까 망설이게 됩니다. 이럴 때면 '참 아쉽다' 싶기도 하지만, 창 밖의 아름다운 전경을 보며 다시 '이걸로 됐다' 생각해요. 게다가 눈부심과 짙은 그림자가 없는 안정적인 환경은 제게 더없이 귀하거든요. 프리랜서에게 집은 먹고 자는 생활공간이기도 하지만, 종일 일하는 업무공간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연애처럼 이 집과 제가 단순히 타이밍이 좋은 것일지 아니면 정말 운명인지는... 차차 알아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