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책을 쓰고 있습니다. 코난북스, 위고, 제철소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인데요. 저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한 가지를 담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가 쓰고 있는 주제는 집이고요, <아무튼, 집>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올 예정입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주에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어야 하는데요. 아직 붙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일주일 내내 더디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는데, 아예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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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에 갔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그래서 작가님은 쓰지 못한 글들이 너무 많다고요. 저는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쓰고 또 쓰는 사람이라, 작가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생각했지요. '너무 사랑해서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때가 있지 않나?' 하고요.
요 며칠 작가님의 그 말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마지막 원고를 쓰지 못해 편집자님께 사죄의 메일을 보내면서도요. 거듭 생각하다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없는 '때'가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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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위 이야기 속 소년과 소녀는 무탈히 밤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험한 곳에서 잠을 참아내지 않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안위를 걱정하실 구독자님이 계실 것 같아 얼른 말씀드려요. 소녀는 자라서 도시의 집과 시골집을 오가며 평안히 살게 되었고 <아무튼, 집>이라는 책도 쓰고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예닐곱 살 무렵 오빠와 둘이서 노숙을 했던 기억을 되짚어 쓴 글입니다. 배수관 안에서 밤을 새운 날이 하루였는지 여러 날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절대 잠들면 안돼, 라고 말했던 오빠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기억하지만요. 오빠는 저보다 두 살이 많았으니 좀 더 기억이 선명할 것 같아요. 카톡 하나 보내면 바로 답장이 오겠지만, 오빠와 기억을 맞추어 볼 용기는 차마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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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무튼, 집>을 쓴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발박수를 치며 환영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래, 너처럼 집에 환장한 애가 아니면 누가 <아무튼, 집>을 쓰겠냐"고 했지요. 사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아, 물론 그 생각이 오래가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집에 대해 쓰려면 가족, 유년 시절, 돈의 형편, 비밀은 아니지만 굳이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속사정을 몽땅 끌러놓아야 하더군요.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집에 대한 제 마음은 상실이었다가, 미움이었다가, 갈망이었다가, 절망이었다가, 포기였다가, 기쁨이었다가, 집착이었다가, 감사였다가, 사랑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사랑이라는 종착점에 계속 머물지 않고, 계속 여러 마음을 오가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몇 만자의 글자에 담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마무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되어 쓸 수 없는 때를 만난 것 같아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원고 마감을 미뤘습니다.
쓸 수 없는 때에 쓸 수 없음에 대해 (결국 또...) 쓰고 있다니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다음 주간보고를 부칠 때는 결국 써낸 자가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