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내는 주간보고입니다. 5월을 건너뛰고 6월로 와 버려서 주간보고라는 이름이 무색하네요. 그새 봄은 아주 갔고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하얀 빛깔의 수많은 초여름 꽃이 피었다가 졌고, 반팔 반바지 차림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여러 일들로 휘청이며 지냈습니다. 프리워커 2년 차가 되었으니 조직 밖 생활에 조금 더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다음 판이 더 어려워야만 하는 게임 같달까요. 냉정히 판단해 보면 판이 어려워진 게 아니라 플레이어(=저)의 능력치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초심자의 행운이 끝났으니 열심히 스킬업을 해야하는 시기 같아요.
오래 공들여 준비하던 일이 아무렇지 않게 엎어진 날도, 늘 기쁘게 해 오던 일이 지루하게 느껴진 날도 있었습니다. 마음만 앞서는 날도 있었지만 마음조차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요. 의외의 행운에 기뻐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짧게 느껴졌어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중간중간 뭐라도 써 보겠다며 주간보고 몇 줄을 썼다 지웠다, 또 몇 줄 썼다 지웠다 반복했는데요. 결국은 실패하고 일단 해내야 하는 다른 마감들을 우선하며 지냈어요. 갑분 근황토크 + 심경고백이라 당황스러우시지요? 그래서 얼른 말씀드리면 오늘은 가뿐한 마음으로 (월간보고 같은) 주간보고를 보냅니다!
현재는 제 역량과 현시점의 여건들을 객관적으로 살피며 개선해 가는 과정에 있어요. 그러면서도 완전히 주관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김미리.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가 원하는 걸 하게 해 줄게.' 하면서요. 아직 차근히 살펴보는 와중에 있고,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내는 사이, 꼭대기집 테라스와 수풀집 마당에 심었던 작물들이 하나둘 열매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토마토는 푸른 동그라미 몇 개를, 앵두나무는 보석같이 빨간 앵두를 수없이 맺었습니다. 완두콩의 납작했던 꼬투리가 제법 통통해졌고, 산책길에 호두나무는 갓난아기 주먹만 한 호두열매를 수없이 달고 서 있습니다.
수풀집 주변의 논들도 모내기를 마쳤더라고요. 이른 아침 산책을 나섰다가 아침볕에 연둣빛으로 반짝이는 풍경을 마주하고 생각했습니다. 단오로구나.
오늘 6월 10일은 음력 5월 5일이고 단옷날이에요. 단오는 모내기를 마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를 행하는 날이면서 여름을 대비하는 날인데요. 설날을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듯 단오를 지내며 여름을 맞이하는 거죠. 1500년대에는 단오가 설날, 추석과 더불어 3대 명절이었다고 하죠(아직도 3대 명절이었다면... 빨간 날이 제법 추가되고 저와 구독자님들이 무척 행복했을 텐데요!).
단오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나쁜 기운을 쫓고 건강히 여름을 보낼 수 있다고 하지요. 저도 어릴 때 몇 번 해본 것 같아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고,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멩이를 끼우며 올해 대추열매가 많이 맺히길 기원하기도 했고요. 단오에는 귀한 이들에게 부채를 선물하며 무더운 여름동안의 안녕을 바라기도 합니다.
단오도, 부채도- 요즘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처럼 작황에 예민하지 않으니까요. 부채보단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더 익숙하고 빠른 해결책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덜 중요해지고 더 잊히겠지요. 그럼에도 단오의 마음만은 계속해서 기억하고 싶습니다.
자연 속 모든 것이 풍성히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마음.
소중한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
몸과 마음이 다가올 더위를 견딜 수 있게 예비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담아 사진 한 장을 부칩니다. 수풀집 마당에서 찍은 앵두 사진인데요. 단오에 앵두를 나누는 풍습도 있었더라고요. 새로 수확한 앵두를 조상에게 올리고 이웃과도 나누어 먹었대요. 앵두가 단오 즈음에 무르익는 제철과일이기도 하고 여름에 처음으로 익는 과실이라 몸과 마음을 지켜준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구독자님의 무사와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수확한 앵두를 (사진으로나마) 담아 보내요. 구독자님을 지키는 사랑스러운 여름부적이 되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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