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콩국수의 계절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콩국수에 조예가 깊은 사람 같죠? 그런데 사실 콩국수는 처음이에요. 아, 어딘가에서 상차림으로 나온 콩국수를 먹어 본 적은 있죠. 동행이 주문한 콩국수를 한두 젓가락 맛본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식당에서 제 메뉴로 콩국수를 주문해 먹거나 집에서 만들어볼 생각은 해본 적은...... 없었더라고요.
요전날 자주 가는 동네 국숫집에 갔습니다. 국수와 수제비가 맛있고 겉절이와 열무김치가 끝내 주는 집인데요. 여느 날처럼 칼국수나 열무 막국수를 주문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콩국수 하나 주세요.”가 튀어나온 거 있죠?
'콩국수 개시'라는 문구와 함께 가게에 걸려 있는 콩국수 사진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옆 테이블에 놓인 걸쭉한 콩국수의 자태 때문이었을까요? 모르겠어요. 하여튼 뭐에 홀린 것처럼 콩국수를 주문했어요. 그리고 첫 입부터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부드럽고 꼬수운 콩국물과 쫀득하고 담백한 중면의 조화는...지금껏 몰랐던 맛이었어요. 6월 14일의 일입니다.
그 후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콩국수를 먹으러 갑니다. 그걸론 모자라 인터넷으로 콩국물을 주문해 콩국수를 만들어먹기도 했고요. 국숫집에서 먹은 걸쭉한 서리태 콩국물을 떠올리며 콩국수 레시피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조만간 퇴사원 주간보고 ‘열해음소’ 코너에 콩국수 레시피를 담아 보낼지도 모르겠네요. 뒤늦게 눈을 뜬 콩국수의 세계는 참으로 꼬숩습니다. 모르고 산 날들이 억울할 지경이에요(콩국수 없이 보냈던 무더운 여름들이여). 한편, 이제라도 콩국수 월드에 진입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도 생각합니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인생 콩국수의 역사(...비장 그 자체)가 기대되기도 하고요.
우연히 시도한 새로운 음식, 콩국수 한 그릇의 파장이 꽤 큽니다. 이렇게 주간보고의 한 꼭지를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모르는 맛, 존재, 이야기, 세계가 잔뜩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으니까요. 제 삶에 들어오려고 기다리는 세상의 조각들이 아직 이렇게 많다는 것, 신나고 재밌는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