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의 바다였어요. 도착하자마자 바다로 달려가 몸을 둥둥 띄웠다, 물장구를 쳤다, 물속으로 잠수했다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날까지 바다로 꽉 채운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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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왜 어릴 때 물에 빠진 경험이 있어 물을 무서워하게 된 사람들 있잖아요.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수영 배울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러다 여행지에서 계획에 없던 스노클링을 하게 됐어요. 무섭고 내키지 않았는데 일행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시도하게 된 거죠. 수심이 허벅지까지 밖에 오지 않고, 구명조끼도 입을 수 있어 안심한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날, 그 바다가... 충격적으로 좋았습니다!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세계로 순간이동을 했다가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무릎이 바위에 긁혀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쉴 새 없이 다리를 첨벙거린 후에 생각했습니다. 아, 사람이 물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물살을 가를 수도 있는 거구나.
그 후 수영과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은 초급반, 프리다이빙은 베이식 과정이라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었어요. 보통 수영을 먼저 배우고 프리다이빙을 배우는데요. 저는 둘을 동시에 배웠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효율적인 방식은 아닌 것 같지만, 물 공포증이 있던 제겐 동시학습이 나름의(?) 시너지를 냈습니다.
수영은 물에 잘 떠서 나아가려는 활동이고 프리다이빙은 최대한 깊이 가라앉으려는 활동이잖아요. 수영 강습에 가서 수면에 몸을 띄우려고 노력하면 가라앉았지만, 프리다이빙 강습에 가서 잠수풀 아래로 가라앉으려고 하면 몸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떠야 할 때 가라앉고 가라앉아야 할 때 떠서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습니다. 근데 또 그래서 선명히 알게 되더군요.
- 초보 수영인의 깨달음 : 아무리 가라앉으려 애를 써도 사람은 물에 뜬다. (단,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겨야 한다)
- 초보 프리다이버의 깨달음 : (호흡과 움직임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부력이 있다 해도 물속 깊이까지 닿을 수 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물이 좋아졌습니다. 잔뜩 긴장했던 뭍에서의 몸을 물에 내맡기는 일이요. 수면에서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그 숨만으로 점점 더 깊은 바다로 향하는 일도요. 그 감각이 그리워서 저는 자꾸 떠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바다와 세계 곳곳의 바다 명소를 향해서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아기 고양이 한 마리와 시골집이 생긴 게 아니겠어요? 멀리의 바다는커녕 가까운 바다로도 떠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죠. 뒤이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덮쳤습니다. 일상의 자유를 빼앗기자 물속에서의 감각은 잊혔어요. 내내 그 채로 멈춰져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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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지난주에, 드디어, 다시!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4년 만에 말이에요.
두 팔로 수면을 가르고 고개를 묻자 부서지는 햇빛과 일렁이는 물결이 평화롭게 둥실거리고 있었어요. 그 사이를 작은 물고기들이 오가고, 깊지 않은 모래 바닥에는 해초를 꼭 문 채 몸을 살짝 숨긴 조개들이 보였습니다. 물장구를 쳐 더 깊은 곳으로 나가자 주변 모든 소리가 천천히 멀어졌어요.
평화로웠어요.
휘익, 쉭. 휘익, 쉭.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다이빙 렁(막대기처럼 생긴 호흡기) 사이를 오고 가는 제 숨소리와 물을 가르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제가 들이켜고 내쉬는 숨이 물속을 채워가는 것 같았어요. 물 밖의 일들은 사실 현실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해변의 소리가 너무 멀게, 아득하게 느껴졌거든요. 물살을 가르며 여기에서 저기로 나아갈 때, 수온이 다른 물줄기들이 순서대로 저를 스쳐 지나갔어요.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고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이끄는 대로, 때로는 물살이 안내하는대로 물속을 오가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바다를 나섰습니다.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졌더라고요. 모래사장을 지나 바다와 멀어지며 생각했어요. 물 밖에서도 물속에서처럼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바깥의 소리보다 내 안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좋아하는 것들은 좀 더 가까이 자세히 보려고 노력하면서. 곁을 내어 준 존재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늘상 새롭게 보면서.
오늘은 바다와 먼 곳에서 바다를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올여름이 지나가기 전 한번 더 바다를 찾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