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소설 작법 수업을 듣고, 틈틈이 쉽게 완성되지 못할 문장들을 늘어놓고 있어요. 요즘 제 취미입니다.
첫 소설을 쓴 건 지난봄입니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이끌려 4주짜리 소설 수업에 등록했고, 수업을 들으며 얼결에 첫 단편소설을 썼어요. 얼결이라고 표현한 것은 수업을 잘못 등록했기 때문입니다… 등록한 수업은 완성한 소설을 돌아가며 합평하는 수업이었는데요, 작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착각해서 잘못 등록했어요. 막상 등록은 했는데 완성한 소설은커녕 시작한 소설도 없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첫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 소설을 쓰는 과정이 어땠냐고요?
막막했어요. 그리고 또… '자유로웠어요.'
저는 주로 에세이를 씁니다. 살아가며 겪고 느낀 것들을 소재 삼아 쓰는 글입니다. 종종 가족, 친구, 지인,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세계의 일들을 불러오기도 해요. 에세이를 쓰는 일은 삶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글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삶의 장면을 되감아 돌아보고 글로 쓰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이유는, 글로 쓰는 모든 것이 ‘실제’의 ‘삶’에서 빌어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들 역시 이 모든 것을 ‘사실’로 상정하고 감상하기 때문이고요.
그렇기에 정한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글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을 것. 글로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실존하는 인물이 책에 등장할 때는 사전에 허락을 구할 것). 허구적으로 연출된 인물이 글 속에 전시되지 않게 할 것. 이 원칙들은 글 쓰는 생활에 명확한 기준점이 되어주었고 여전히 제게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 같고요. 그렇지만 이 원칙들이 꽤 촘촘한 거름망이라, 통과하고 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사라집니다. 쓰지 못한 마음, 썼다가도 다시 여며둔 마음들이 제 곁에 쌓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생각했습니다. "사실이 아니어도 되는, 사실이 아니어야 하는 글을 쓰면 어떨까?" 물음표를 주욱 펼쳐 느낌표로 만들어준 것은- 허구를 쓰는 일, 소설 쓰기였습니다.
소설 속 인물은 있을 법하지만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떤 부분은 저에게서, 어떤 부분은 제가 아는 어떤 이에게서 빌어온 것이지만- 최선을 다해 실재성을 삭제하고 새로운 인물로 탄생시킵니다. 그는 여성이었다가도 남성이 될 수 있고, 중년 남성이었다가도 순식간에 소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이야기 속 배경, 시점, 사건… 모든 것의 제한이 없죠.
소설을 쓰다 보니 제가 아니어야 하는 순간이 많더라고요. 특히 초고를 다 쓰고 퇴고를 할 때가 그렇습니다. 저는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어 소설로 들어갑니다. 그 인물이 되어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체험해요. 차례차례 소설 속 모든 인물이 되어볼 때까지 그 작업을 반복합니다. 그 인물이 되어 말을 고르고 행동합니다. 소설 속 시간을 겪어냅니다. 가능하면 저 자신이 아니어야 하는 이 과정을 거듭하면서, 삶이 타인을 향해 넓어진다는 말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독자(제 소설의 독자는 저 자신과 몇몇의 지인, 선생님과 문우들 뿐이지만)들이 이것이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임을 전제하고 읽는다는 사실이 좋습니다. 자유롭게 가짜를 말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허구를 향해 열심히 나아갑니다. 그렇지만 끝내는 제가 하고 싶은 말, '진짜'를 말하게 됩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게 소설 쓰기의 특별한 점입니다.
소설을 써서 무엇을 하겠다거나 무엇이 되겠다거나 그런 의지는 없습니다.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나 언제까지 완성해야겠다는 목표도 없고요. 그냥 일련의 과정이 지금처럼 계속 재밌으면 좋겠어요. 이런 걸 취미라 부르잖아요. 아, 지금부터 목표를 하나 세울게요. 계속해서 소설 쓰기를 취미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야 하는 일의 영역에 두지 않고 계속해서 하고 싶을 때만 하는 일로 두고 싶어요.
제 취미는 소설 쓰기입니다. 취미니까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더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