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레 살림살이를 정리 중인 수풀집에 앞집 할머니, 김채순 여사님이 오셨습니다.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김채순 여사님은 제가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어르신입니다. 제 브런치 메이트이자 농사 선생님이시고요.
할머니가 집에 오시니까 반려묘 소망이도 냐앙, 하며 반기더라고요. 소망이의 환대에 할머니가 기뻐하셨어요.
"아이고. 아기가 나한티도 인사 허네. 몇 번 봤다고 아는 치 하네."
사실 소망이는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환대하는, 뉴페이스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고양인데요. 할머니와 소망이의 다정한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러게요, 할머니를 기억하나 봐요.' 하고 답했어요. 실은 오늘 아침 다녀가신 세탁기 설치기사님도 매우 반가워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고요.
"아기가 누나 잘 만나서 아주 호강하네. 동네서 고냥이들이 영 다치고 그런댜. 얼마나 아플거여."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어요. 할머니와 저는 동네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눴습니다. 이야기 끝에 할머니는 말씀하셨어요.
"갸들, 딱혀서 어쩌까."
할머니와는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살림살이가 망가졌다는 투정이나 일이 바빠 고생스럽다는 엄살까지도요. 할머니는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고는 말씀하시죠.
"대근해서 어쪄(피곤해서 어떡해.) 딱혀서 어쩌까."
허투루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걸, 할머니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딱혀서 어쩌까. 그 말을 할 때 고양이의 아픔을, 상대의 속상함을, 피로를- 나눠 들어주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요. 아주 잠깐이지만요. 그 찰나에 위로를 얻습니다.
잠시 후 할머니는 청소를 너무 오래 방해했다며 양손을 훠이훠이 흔드시며 건너가셨어요. 할머니가 떠난 뒤에도 그 말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딱혀서 어쩌까. 딱혀서 어쩌까. 딱혀서 어쩌까. 들을 때는 위로의 말이었는데 읊다 보니 이해의 말로 다가왔습니다.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상황도 없다는 말 같아요.
김채순 여사님의 문장이 필요한 분이 또 계실까 하여 주간보고에 실어 보냅니다. 참고로 이 말은 요즘 제 주문이 되었습니다. 딱해서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