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새벽 3시, 양양으로 향했습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요. 일출 예상시간이 5시 17분이라길래 4시 50분쯤 낙산사 주차장에 도착했어요. 차에서 내리니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저를 맞았습니다.
꽤 싸늘해서 점퍼를 꺼내 입고 낙산사 입구로 향했습니다. 사찰의 초입을 지나 연꽃이 가득한 관음지, 금빛 불상이 가득한 보타전을 차례로 지나쳤어요. 염불을 외는 스님의 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낙산사의 일출 스팟, 해수관음상으로 향했습니다.
바다를 옆에 낀 언덕을 열심히 오르는데 갑자기 주변이 훤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 어라?
순간 푸른 빛깔 한지에 붉은 물감을 톡 떨어뜨린 것마냥 순식간에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일출 예상시간까지 아직 15분이나 남아 있는데 말이에요!
결국 저는 해송이 울창한 언덕의 중턱에서 떠오르는 해의 옆구리(쯤으로 예상되는) 부분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솟아오른 해는 수평선 위에 구름 뒤로 쏙 숨어버리기까지 하더군요. 밝아졌던 하늘은 다시 캄캄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야속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섰다가 다시 언덕을 올랐습니다. 그래도 해수관음상까지 가보려고요.
관음상이 있는 언덕 꼭대기에 다다랐지만 날은 계속 흐리고 해가 다시 나올 기미는 없었습니다. 바다 위 떼구름은 여전히 두텁고, 넓고, 해가 다시 나올 틈이 없어 보였고요. 보살상 주변에는 롱패딩을 입고 일찍이 일출을 지켜본 몇몇 선생님들이 계셨는데요. 일출 전문가 포스를 풍기는 선생님들조차 곧 자리를 뜨기 시작하더라고요. 오늘 일출은 글렀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바다는 늘 여기 있고 해는 매일 뜨니까, 또 오면 되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쉬워서 느적느적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때 하늘 한편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선가 빛 한 줄기가 촤르륵 쏟아졌어요.
거기엔 두툼한 구름을 뚫고 정수리를 내민 해가 있었습니다. 저는 자리에 붙박인 채 가만 지켜봤어요.
해는 바다 위에 아주 얇은 선 하나를 그렸습니다. 얇은 선은 점차 넓어지며 하나의 면을 만들더니 잠시 후엔 수평선에 멀어지며 하늘과 바다를 붉은 빛깔로 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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