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드디어(강조) 해가 졌어요. 요즘 프라하는 밤 10시는 넘어야 해가 집니다. 야경을 즐기려면 늦게까지 도시를 활보해야 하는 거죠. 덕분에 저는 걷고 또 걷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 사진은 9시 넘어 찍었는데도 하늘이 여전히 밝네요.
10년 만에 프라하에 왔습니다. 이 도시의 어떤 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어떤 면은 너무나 달라져 있다고 느꼈어요. 무엇이 여전하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헤아리다 그만뒀습니다. 그땐 추운 겨울이었고, 프라하를 제대로 알기에 일주일은 너무 짧았거든요. 무엇보다 프라하에 온 제가 그때의 저와는 많이 달라서, 비교가 의미 없다 싶었어요.
2015년의 저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뒤 한 달간의 동유럽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여행의 첫 도시가 바로 프라하였어요. 프라하에 도착한 후, 매일의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어요. 서울에 돌아가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내 곁엔 누가 있지? 앞으로 뭘 하면서 살면 좋을까? 남은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한테 미래라는 게... 있긴 있나? 이런 질문들을 속으로 굴리면 굴릴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점점 더 막막해졌고요. 클라우드에서 당시 썼던 메모를 찾았는데요.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직업도 돈도 없는 서른이 되었다.
구시가 광장 벤치에 앉아 메모를 적고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출장보고를 쓰다 보니) 납니다... 지금 봐도 슬프네요. 오늘 그 벤치에 다시 앉으니 과거의 저와 나란히 앉은 기분이었어요. 물론 지금의 저는, 그 모든 질문의 답을 알고 있죠.
다시 취업할 수 있어, 네가 상상도 못 했던 멋진 곳에서 일하게 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그런 말 믿지 마. 너는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신나게 일하게 되는데 대신에 야근과 밤샘도 신나게 하게 될 거야. 그리고 돈 때문에 너무 많이 울지는 마, 돈이 꽤 중요하긴 하지만 돈이 전부가 되면 불행해지거든. 그리고 -
내가 너의 미래야.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 안에서만 상상할 수 있잖아. 그런데 너는 네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멋진 날들을 살고 싶잖아. 그래서 앞으로를 그릴 수 없는 것뿐이야.
2025년의 저 역시, 질문을 한가득 안고 다시 프라하에 왔습니다. 어떤 면은 많이 달라졌지만 삶을 막막해하는 점만큼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과거를 향한 이 말들이 지금의 저를 희망차게 하고, 믿을 구석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10년 전과 달리 지금의 제가 잘 아는 것은, 미래는 확실히 있다는 것 - 어떤 방식으로든 온다는 것 - 그것입니다.
오늘 낮에는 그렇게 10년 전의 저와 나란히 앉아, 다시 10년 후에 올 저를 기다려 봤습니다.
강가에 앉아 읽은 책은 최유안 소설가가 쓴 '카프카의 프라하'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의 장편소설 『 성 』 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하는데요. 그 부분을 읽으며 얼른 출장보고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구독자님께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