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당에서) 줄이 너무 기네. 괜찮아, 다음에 오지 뭐.
- (공연 예매할 때) 벌써 매진인가 봐. 요샌 공연 끝나면 유튜브에 바로 올라오잖아, 괜찮아.
최초 발병은 7세 전후로 추측되는데요. 다음은 발병 초기의 사례입니다. 장난감 가게에서 갖고 싶은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이렇게 말하곤 했대요.
엄마.
나중에 엄마 돈 많이 벌어서
부우~우자가 되면
나 그때 이거 사줄 수 있어?
지금은 괜찮아.
세월이 지나며 여러 사건과 감정이 유착되며 복잡한 합병증도 발생했습니다.
- (가게에서) 이거 사려고 했는데… 벌써 다 팔렸네. 재고 있나 물어볼까? 됐어, 귀찮아. 없음 죽는 것도 아니고.
- (약속할 때) 취소됐다고? 사실 나도 조금 귀찮았는데 잘 됐다.
‘괜찮아’로 시작된 찮아병은 ‘귀찮아’까지 전이되었는데요. ‘괜찮아’와 ‘귀찮아’를 남발하며 너무 절박해지지 않으려고 더욱 절박하게 애를 쓰는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이 병은 만성적이며 원인 또한 매우 복합적이라 단일한 요인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예상치 못한 상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상실감을 자발적으로 완화하기 위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병의 치료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전문가들은 보통 여행을 권장합니다. 기간과 장소의 정함이 있어 쉽게 다음을 상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괜찮아’와 ‘귀찮아’를 덜 말하게 되니까요. 아, 물론 여행이 완전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지에서의 삶도 익숙해지면 금세 생활이 되고, 여행이라는 것에는 언제나 끝이 있으니까요.
감정에 솔직해지겠다는 태도, 아쉬워하거나 실망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마음가짐,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기필코 주고 말겠다는 각오를 늘 지니는 것이 중요하대요. 프라하에서 저는 찮아병을 마주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과정에 있습니다.